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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오스는 295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으며, 45년 동안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다. 그는 50년간 정통 신학을 개진하고 옹호하는 데에 중심 인물이었다. 잇따른 공격과 5차에 걸친 추방에도 불구하고 373년도 서거할 때까지 그 지위를 고수하였다. 특히 그는 성서의 정경화 과정에서의 갈등을 중재했다. 그가 주후 367년에 쓴 절기 서신(Festal Epistle)은 신약 정경을 오늘날과 같은 27권으로 구성된 책으로 정의한 최초의 글로 공통된 평가를 받는다. 


아타나시오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대하여’는 사색적 추론의 연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인 결심에 대한 호소다. 이 글은 후기 교부 사상의 이탈의 요점이다. 뻔뻔스런 초기 진술에서 아리우스주의는 말씀은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들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통해서 핵심적인 신념을 즉시 거부했다. 더 위대하며, 덜 위대한 신성 개념의 도치에 대해서 아타나시오스는 남은 생애 동안 항상 용감하게, 때때로 비통하게 맞섰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 글은 이른 시기에보다 성숙한 아타나시오의 신학을 보여주는 후기 저서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타나시오스가 이 작품을 저술했을 때, ‘말씀의 성육신에 대하여’는 하나의 연속적인 강론이었지만, 그는 대략 아래와 같이 아주 분명하게 주요 구분을 표시했다.

Ⅰ. 프롤로그(1-3장)

Ⅱ. 말씀의 오심(4-19장)

Ⅲ. 십자가의 승리(20-32장)

Ⅳ. 비판에 대한 답변: A. 유대인들(33-40장), B. 그리스인들(41-54장)

Ⅴ. 에필로그(55-57장)


먼저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전의 책들에서 밝힌 내용을 한 번 더 언급하면서, 말씀의 인간되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가운데 신적으로 현현하신 것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4-19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말씀으로 오셨고,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는지에 대해서 논한다. 20-32장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으로 추구하신 사역을 이야기한다. 십자가만이 인류의 모든 죄를 해결할 수 있으며, 말씀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33-40장은 유대인들의 비판에 대해서 구약을 통해서 답변을 하며, 41-54장은 그리스인들의 비판에 대해 철학적 답변을 한다.  


아타나시오스는 말씀의 성육신을 논의하기 전에 인류의 기원의 문제를 다룬다. 왜냐하면 태초에 만물이 회복됨은 세상을 만드셨던 바로 그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적절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바로 그 말씀을 안에서 세상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가 우리 때문이었음을, 그리고 우리의 범죄가 말씀의 자비를 불러일으켰음을,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돕는 것과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 이 두 가지를 서두르실 수 밖에 없었음을 우리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타나시오스는 십자가의 승리를 말한다. 타락할 수 있는 것을 타락할 수 없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태초에 무로부터 모든 것들을 만드셨던 구세주 자신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힘으로 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것도 인간을 위해서 아버지의 형상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을 새롭게 창조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죽어야 하므로, 모든 사람이 짊어진 채무는 다시 갚아져야 한다. 그의 사역으로부터 자신의 신성을 입증한 다음에, 우선 사람들이 옛 범죄로부터 청산하고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부활의 첫 열매로서 자기 몸이 타락할 수 없음을 나타내시면서 자기 자신이 죽음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성전(=몸)을 죽음에게 내 줌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위한 희생물이 되셨다. 구세주는 자기의 죽음을 완성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죽음을 완성하려고 오셨다.


이러한 육체의 부활과 구세주에 의해서 죽음을 이긴 승리에 대해 당시의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고, 그리스인들은 조소했다. 이러한 의견에 아타나시오스는 명확하게 반박한다. 먼저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믿는 구약성경을 통해 그들의 이의 제기에 응답한다. 이사야와 모세, 호세아 등이 이미 예견했던 메시아의 이미지는 성육신과 그의 사역, 십자가와 부활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준다. 또한 그리스인들에게는 그 생각의 오류를 짚어준다. 그분이 전체를 행하시는 것으로 질서를 세우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있으며, 사람을 통하여 기꺼이 자신을 알리면서 아버지에 대한 지식과 진리를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면, 마찬가지로 불합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성도 역시 전체의 실제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2장 6-8절의 본문에서 보여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성경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핵심적인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다루어지지 않는 주제였다. 특별히 십자가에 비해 성육신과 부활에 대한 논의는 극히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타나시오스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인간의 기원부터 시작해,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까지 조명한다. 오늘날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성육신과 그 분께서 사셨던 인간적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면면히 밝히고 있다. 다만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와 역할에 대해서는 강조한 반면, 성령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궁금했다. 그것의 의미와 목적과 더불어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땅에 오심이 내 마음 가운데 깊이 와 닿기를 원했다. 하지만 명확하고 방대하게 구세주의 이 땅에 오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 글을 통해 말씀이신 그 분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며 장엄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더 깊고 풍성한 의미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 


또한 신학자와 목회자로 살아감에 있어 아타나시오스의 마지막 말은 가슴을 울린다. 성경을 연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성경에 대한 참된 지식을 위하여 선한 삶의 변화가 필요하며, 순수한 영혼과 그리스도에 합당한 덕행이 요구된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자기 영혼을 닦고 청결하게 하는 것을 시작할 필요가 있으며, 성인들의 행동들을 모방함으로써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아타나시오스의 말처럼 삶에 부끄러움 없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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