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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선언오늘나는대학을그만둔다아니거부한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예슬 (느린걸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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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_ p. 14

이 체제는 온전한 것을 갖고 태어난 인간을 매일 매일 불구자로 망가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_ p. 59

래디컬(Radical)하다는 것은 근원적이라는 것이다. 근원적이라 함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보고, 문제의 원인을 바탕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그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려는 태도이다. _ p.70

충분히 래디컬할 때 유연하고 자유롭고 아름답고 성실하고 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_ p.71

'나는 이렇게 산다. 나와 함께 살아가자'
"그대는 진리를 알려고 하는가, 진리를 살려고 하는가. 그대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가, 길을 걸으려고 하는가. 그대는 사랑을 배우려고 하는가, 사랑을 하려고 하는가"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그만 생각하기, 행동하기! 지금 바로 살아가기! _ p.84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_ p.87

우리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만들어 지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 겪고 만나고 헤매고 상처받고 저항하고 사랑한 만큼 만들어진다.
교육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행위일 것이다.
비록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 생활과 삶에 적용하고, 시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불의에 저하아고, 진정한 나를 찾아 살아내는 것에 관심을 둔다. 나는 아는 만큼 살아내고 있는가? 문제는 '삶'이 아닐까? _ p.88

욕망의 제공자와 욕망의 대상이 끌어당기는 힘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래서 그로부터 진정 빠져 나오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자신을 찾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_ p.108

'돈에서 시작할 것인가? 삶에서 시작할 것인가?'
그런 커다란 자기부정 끝에 커다란 자기긍정이 찾아 왔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그것은 평생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왜 내가 남이 되려고 하는가? 나는 남을 이겨 앞서가기를 거부한다. 오직 나를 이겨 진정한 나 자신의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나에게 부족한 것은 좋은 벗들로 대신하고, 내가 잘하는 것은 서로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눈 앞의 대학이나 직업보다 더 큰 존재라고 당당하게 외치자_ p.111


가히 충격적인 책이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구조악에 대한 담론들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구조악에 대해서 고민하고 질문하며, 싸워내야한다. 
직접적인 '복음'은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내용은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대학생들이 읽어야할 책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할 책이다.

얼마나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그치고, 질문하기를 무서워하며, 이론대로 살아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많은지,,
다시 삶으로 살아내고, 질문하며, 잘못된 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라고 말할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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